부드러운 방 - 시간⋅거울⋅심담(深談)김정연展 / KIMJEONGYEON / 金精延 / sculpture 2021_0811 ▶ 2021_0831 / 월요일 휴관김정연_부드러운 집_나무판에 혼합재료, 나무 브론즈_120×197×7cm_2021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관람시간 / 11:30am~06:30pm / 월요일 휴관 아트비트 갤러리ARTBIT GALLERY서울 종로구 율곡로3길 74-13(화동 132번지)Tel. +82.(0)2.738.5511www.artbit.kr 시간⋅거울⋅심담(深談) ● 이십여 년간 중단없이 달리고 치열한 작업 활동을 벌여온 김정연 작가의 개인전이다. 이번 전시를 그렇게 미뤄왔다. '적절한 시간'이 작가에겐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젊은 작가들에겐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초고속'이 곧 감-지-심(감성, 지성, 심장)의 리듬인 시대, 시간이란 참을 수 없는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김정연에게는 나만의 '때(kairos)'를 찾고 맞이하는 느림과 긴축(緊縮)이 있다. ● 김정연 작업의 근간은 '시간'이다. 작가에게 시간이란 무엇인가? 자전적 성향이 강한 작가의 작업에서 시간은 먼저, 거울에 비유된다. 즉, 자기를 비추는 '거울 시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정연에게 시간은 삶을 직면하고, 자신을 포착하고, 미지의 가능성이 늘 그리운, 삶의 현장이다. 작가의 작업을 만나기 위해선, 그 어떤 외부적 시선을 거두고, 단순해져야만 하겠다. 피투(被投)적 존재로서 김정연의 시간이 불안을 내포한다면, 그것은 매우 값진 의미에서의 작업의 원동력이다. 작업은 불안과 자유롭고 적정한 '나' 경계에서 이뤄지며, 매 순간의 고군분투를 담는다. 그래서 심담(深談)이다. 나의 오랜, 두터운, 나만의 이야기란 뜻이다. 김정연_풍경 속을 거닐다_대리석, 브론즈, 오석, 스텐_145×45cm_2021김정연_부드러운 방_나무판에 혼합재료_40×40cm_2021김정연_부드러운 방_나무판에 혼합재료, 나무 브론즈_117×90cm_2021김정연_부드러운 방_나무판에 혼합재료, 오일스틱, 나무_43×71cm_2021 첫 딸아이를 낳고 매달렸던 초기의 '돌 작업'(여성의 육체성이 두드러진 이 작업에선, 큰 규모의 단단한 돌을 파고 들어가 얻어낸 유연한 곡선이, 저항하는 매체와 기막힌 조화를 이룬다. 섬묘纖妙의 힘이 느껴진다), 그것을 잇는 '부드러운 방'(천을 이어 만든 입체작업이다. 결혼에서 시작된 삶의 동요, 어려움, 비-언어적인 고통의 시간을 버텨내고자 시작한 작업이며, '나'에 대한 질문이 강하다). 이후 나타난 파란 청동 조각의 '어린 왕자' 시리즈(질풍노도기의 사춘기 아들을 키우면서 시작한 작업이며, 무심하고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상은 성(姓)이 불분명하고, 기묘한 느낌이다). 앞의 폭풍과 같은 청년기를 지나, 엄연한 삶의 중반기에 들어선 김정연의 이번 작업은 폭풍의 시간대를 벗어나, 안전과 감내한 자만이 아는, '자기만의 시간대'에 앉아 있게 된 느낌이다. 자연으로 치면 순풍의 시간이다. 작업은 추상과 구상이 무심히 공존하고, 인물이 줄고, 더 직관적이고, 더 덜어내고, 더 느긋하다. ● 스스로도 강조해왔듯이, 「부드러운 방」은 김정연의 나름 초기작이자 토대적인 작업이다. 조각난 천에 담긴 토르소(자화상)를 바느질로 이어 정방형의 방을 만든 설치 작업인데, 그 안에 배려, 수용, 소통에 대한 기원을 담는다. 이 「방」 이후의 평면작업에 도입된 조각보 화면들은 「부드러운 방」이 그 기반임을 알려준다. 이번 작업 또한 「방」 작업의 일환이다. 작업은 「부드러운 방」에 이어지지만, 천의 토르소(torso) '구멍'이 암시하듯이, 원형(原形)의 방에는 변화와 확장이 일어난다. 「 시간⋅거울⋅심담 」에 나타난 변화는, 평면이 메인으로 자리잡고(나름 돌출된 평면은 입체를 다뤄온 작가의 흔적이다), 작은 조각보 형식이 경계 없이 이어지고, 색채가 부상한다는 것이다. 추(상)구상의 모티브들은 작가가 알고 모르는 심상을 담는다. 김정연_부드러운 방_나무판에 혼합재료, 오일스틱, 나무_2021김정연_부드러운 집_나무판에 혼합재료, 나무 브론즈김정연_어린 왕자가 있는 풍경_브론즈, 고가구_110×100×35cm_2021 김정연의 작업 방식을 '요행'(徼幸, 뜻하지 않게 얻어진 행운)이라 칭해보자. 사실, 작가들에 있어서 작업의 많은 요소는 운 좋게 얻어진 것들이다. 이는 오늘날 모든 작가가 일인 기획자이고 현대미술에서 개념적 설계가 중요한 시대라 해도, 마찬가지이다. 현대미술이 우연의 개념에 몰두했던 것을 기억하자. 무의식의 개념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삶의 주위를 부유하다 '때'가 되면 반짝이며 표면 부상하는 심상들, 형태들, 물질들. 그리고 모진 '사냥'과 포획의 시간, 진땀 나는 작가의 추격전. 장흥에 위치한 가나 작업실은 바닥에 널브러진 오브제가 가득하고, 공간은 마치도 익숙하고도 먼 형상을 낚기 위한 넓은 무의식의 사냥터 내지는 낚시꾼의 그물과도 같다. 그 안에서 이미지, 형태, 매체는 오랜 것과 지금 또는 내일의 것이 자유로이 엮이고, 위계 없이 은밀히 조우한다. 지금의 요행은 어디로 작가를 안내할는지. 김정연의 '되기'(devenir)가 궁금해진다. ■ 김예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