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과 물질 Material and Being Material손혜경展 / SONHYEKYUNG / 孫惠敬 / installation 2021_0903 ▶ 2021_1007 / 월요일,추석연휴 휴관손혜경_추상적 인간노동-구체적인 것에 기댄 증식_스탠드 옷걸이, 아크릴, LED 조명_200×210×60cm_2021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후원 / 서울문화재단주최,기획 / 아마도예술공간관람시간 / 12:00pm~07:00pm / 월요일,추석연휴 휴관 아마도예술공간AMADO ART SPACE서울 용산구 이태원로54길 8(한남동 683-31번지)Tel. +82.(0)2.790.1178www.amadoart.org 현실에 있는 그대로의 ● 사유된 물질 ● 손혜경은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과 지양에 관심을 두고 이를 조형화하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이번 개인전 『물질과 물질』에서는 조형의 언어이자 세계관으로서 유물론에 대한 연구와 사유를 작품화한다. 유물론은 인간의 의식 바깥에 독립적,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물질로부터 세계를 이해하는 사상이자 인간의 물질적 생산 활동을 통해 형성된 일정한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작가는 이러한 생산활동이 시대마다 달랐음에 주목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물질적 생산 활동을 개념적으로 파악하고자 한다. 이에 물질을 초역사적으로 두거나 경험이나 감각적 차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물질의 생산과 분배, 소비에 투영된 인간들의 사회적 관계를 본다. 이는 인간의 사회적 관계나 실천적 활동을 도외시한 채 순수한 개인으로써 인간을 바라보는 관념적, 추상적 관점을 비판하고, 현실에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손혜경_추상적 인간노동-모순이 일으킨 가상_모자걸이, 인조대리석_125×125×60cm_2021손혜경_물질과 물질展_아마도예술공간_2021_사진 조준용손혜경_잉여가치율-착취를 통한 확산_냄비뚜껑 정리대, 아크릴_85×60×10cm_2021손혜경_잉여가치율-착취를 통한 확산_냄비뚜껑 정리대, 아크릴_85×60×10cm_2021 법칙을 조형하기 ● 현재와 같은 생각으로 작품을 제작하기까지 몇 번의 변화가 있었다. 첫 개인전 『숨겨진 공간』(2006)은 뿌리라는 자연 소재를 빌어 자아와 내면, 무의식의 에너지를 비정형적이고 초현실적 공간 설치로 표현한 작업이었다. 라텍스, 철, 파라핀, 스타킹, 황토, 핸디코트, 화판 등 다양한 재료의 실험과 결합은 설치미술이라는 장 안에서 표현된 내면의 풍경이었다. 이와 달리 좀 더 단순하게 발견된 오브제를 작업에 적용한 것은 영국으로 유학 가면서다. 일상에서 발견한 오브제의 형태, 소재, 기능, 색 등을 관찰하여 재료가 지닌 질과 물성의 차이를 연결함으로써 아이러니한 세계의 상황을 유희적으로 포착한 작업이었다. 이 시기에는 우연적, 일시적, 즉흥적으로 개입하는 작가적 태도가 체제에 저항하는 예술의 가능성이라 여겼다. ● 발견된 오브제를 통한 감각적, 설치적 조형을 넘어 조각의 조형 의지로 이어진 것은 사회를 이론(理論)적이고 개념(槪念)적으로 이해하면서부터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오브제의 직관적 발견에서 가격이 같은 두 개의 상품 오브제를 구매한다는 의식적 개입이다. 개인전 『인간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이다』(2019)는 동일한 두 상품으로부터 출발하여 그것이 운동하는 모습을 「연희예우」, 「고양상장」, 「랜드청정」, 「랜드전신」 등의 연작으로 보여주었다. 통일과 균형을 취한 전체적인 구조와 달리 내부에는 불균형과 모순적 표현이 자리하는데 이는 작가가 자본주의 사회 내부에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적대성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상품 간 관계는 작가가 구조화한 내적 법칙에 따라 자본주의의 모순을 드러내고 그 지양(止揚)을 표현한 것이다. ● 작가는 이 같은 방법을 변증법적 유물론에 따른 조각이라 의식적으로 표명해왔고, 이번 작업은 그 연장선에서 유물론에 좀 더 초점을 두고자 했다. 상품, 노동, 화폐, 자본 등 세분화된 개념적 접근을 통해 자본주의가 운동하는 여러 계기를 살핌으로써 하나의 조각에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과 대립, 통일을 총체적으로 표현했던 이전 연작과 달리 전시장의 분할된 공간을 따라 총체적 인식을 저변에 두고 여러 형태의 조형을 배치한다. ● 「추상적 인간노동-구체적인 것에 기댄 증식」, 「추상적 인간노동-모순이 일으킨 가상」, 「잉여가치율-착취를 통한 확산」은 자본주의 사회의 유일한 목적인 자본의 증식이 어떤 근거로부터 비롯된 것인가를 보여주는 작업이다. 작가가 스탠드 옷걸이, 모자걸이, 냄비뚜껑 정리대를 조각의 오브제로 선택한 것은 이 것들이 사회적, 경제적 의미에서의 상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품이 생산되고 개인적으로 소비되기까지의 자연스러운 이 과정에는 공공연한 비밀이 숨어 있다. 우리 사회는 주식이나 부동산과 같은 투기를 통해 돈이 돈을 낳는다고 하지만,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사용되는 노동력 때문에 자본은 증식될 수 있다. 자본가는 자신이 판매할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노동자를 고용하고 그에게 일을 시키지만 일한 비용의 일부만을 지급할 뿐이다. 실은 노동자에게 지급하지 않은 그 비용이 자본 증식의 토대라는 당연한 사실 위에 이 작품들은 근거한다. 그러므로 노동이 만들어낸 상품은 단순한 물건일 수 없다는 사실이 중요해진다. 작가는 이 상품들의 평면 그림자를 입체화하여 눈에 보이는 것 이면에 자리한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상품 오브제의 반대편에 집중된 조각의 형태를 만든다. 기울어진 스탠드 옷걸이의 반투명 아크릴 구조물, 기울어진 모자걸이의 인조 대리석, 냄비뚜껑 정리대의 투명 아크릴은 떠받치거나 거꾸로 서거나 확산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상품 오브제와 과장된 그림자 조각이 서로 맞닿아 의존하고 지지하는 모습은 우리 시대에 상품의 근원에 자리한 것이 무엇인가를 되묻는다. 손혜경_자본의 회전_북앤드, 알루미늄, 네온, 구슬자석_120×55×15cm_2021손혜경_자본의 회전_북앤드, 알루미늄, 네온, 구슬자석_120×55×15cm_2021손혜경_일반적 등가형태-동일성 없는 차이_abs 플라스틱_60×90×123cm, 12×30×20cm_2021손혜경_일반적 등가형태-동일성 없는 차이_abs 플라스틱_15×56×48cm, 13×23×30cm, 25×50×35cm_2021 자본의 증식만이 유일한 목적인 현실에 대한 비판은 「자본의 회전」, 「일반적 등가 형태-동일성 없는 차이」로 이어진다. 「자본의 회전」은 눈에 보이는 상품에는 드러난 만큼만이 아니라 그것을 만들기 위해서 다른 것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 것이다. 북앤드가 생산되는 과정에서 외각이 아치 모양만큼 잘렸을 것이라는 가정하에 북앤드 10개에서 잘려나갔을 옆면 길이를 더한 폭이 지지대가 되어 등장한다. 이 아치형 지지대와 네온 지지대는 가격이 같은 다수의 북앤드가 쌓이면서 상승하는 구조를 받쳐줌으로써 회전하는 구조를 만든다. 이 조각은 상품의 무한한 생산이 자본의 증식과 확장을 향해서만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일반적 등가형태-동일성 없는 차이」는 다른 특징과 기능을 가진 상품들이 화폐로 획일화되는 모습을 조각으로 표현한 것이다. 컵, 화분, 청소도구, 테블릿 거치대, 서류함, 여행 가방 등은 플라스틱 열 성형을 통해 자신의 모습과 고유한 특징을 잃고 덩어리에 묶여 불완전한 모습을 드러낸다. 이 작품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물건의 관점으로 사물을 본 것이 아니라 상품들이 오직 화폐로만 가격이 매겨지는 즉, 양적 차이로만 획일화되는 것도 우리 시대의 한 특징임을 보여준다. ● 자본주의의 운동을 경유한 조형을 제시한 후, 작가는 전시의 마지막에 이르러 「부정적 모순」, 「사변적 모순」을 제시한다. 「부정적 모순」은 조립식으로 판매되는 테이블 다리라는 하나의 상품 오브제가 그와 똑같은 두께와 색깔을 가진 철로 확장해 나가면서 구조를 이룬 모습이다. 여기서 투명 아크릴 조각은 원래의 상품이 다른 물질로 나아가는 시작점으로 상정된 것이다. 이처럼 분리가 시작된 선재의 운동은 상품 오브제의 기능과 형태를 참조로 하여 불균형을 이루면서도 균형을 이루는 조각이 되어 상품을 품어 버린다. 무엇이 상품이고 아닌지 알 수 없게 된 상태에서 모순의 운동은 구조물에 안착한다. 반면 「사변적 모순」은 「부정적 모순」에 사용된 테이블 다리와 그것이 확장하는 형태의 잔상을 스테인리스 스틸 판재로 용접한 조각으로 푸른색 아크릴 통로와 함께 설치된 것이다. 상품 오브제와 잔상은 통일된 조각을 이루며 다르게 보기를 요청한다. 애초 상품이라는 물질은 세계를 사유하기 위한 매개였지만 상품이 사라진 자리에 떠오른 새로운 조각은 또다시 자본주의의 사회의 모순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질문하게 한다. 손혜경_부정적 모순_테이블 다리, 철, 분체도장, 아크릴_150×70×130cm_2021손혜경_부정적 모순_테이블 다리, 철, 분체도장, 아크릴_150×70×130cm_2021손혜경_사변적 모순_스테인리스 스틸, 아크릴_70×110×80cm, 가변설치_2021손혜경_사변적 모순_스테인리스 스틸, 아크릴_70×110×80cm, 가변설치_2021손혜경_물질과 물질展_아마도예술공간_2021_사진 조준용 이론과 현실, 그리고 조각 ● 20세기 이후의 미술가들은 과거와 같은 양식으로 미를 생산하지 않는다.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예술을 통해 진리를 표현하고자 하는 예술가들은 체제에 저항하고 또 그와 다른 세계를 지향하면서 미의 개념을 다르게 발전시키고 있다. 현대미술의 문제의식도 그 연장선에서 발전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손혜경 작가의 작업 행보도 어떤 면에서는 이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작가는 감각과 직관을 통해 미의 개념을 산출하던 태도를 넘어 자본주의의 법칙에 대한 올바른 이론을 보유함으로써 그에 따르는 미의 개념과 조형을 제시한다. 그의 이론적 토대이자 조형적 토대가 된 헤겔을 경유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이 운동하는 방식을 연구했고, 그 이론은 다시 우리에게 현실을 보는 눈을 제공했다. 그가 관찰하고 서술한 방법은 공리나 명제, 정의 같은 것이 아니라 세계가 운동하는 방식에 이미 내재해 있던 것, 그 본성을 드러낸 것이므로 그의 이론은 자본주의의 개념이다. 이 개념을 시각화하려는 것이 손혜경 작가의 조형 의지이다. 작가는 연구자가 연구 노트를 써 내려가듯 자신의 작업도 이론 연구의 조형화라 말한다. 만약 그가 따르는 이론이 올바르다면, 그것이 우리 현실의 모습 그대로라면, 그가 제시하는 조형도 올바를 것이다. 작가의 변화와 발전은 자신의 조형을 점검하고 새로운 조형을 시도하는 과정 속에서 관철되고 있다. ■ 신양희